불나방
토치 TORCH
"센티넬"
- 나이27세
- 키158cm
- MBTIISTP
모스 MOTH
"가이드"
- 나이25세
- 생일10월 23일
- 키171cm
- MBTIINFP
페어 설정
길을 인도하는 횃불
그 횃불에 이끌린 나방
둘이 만나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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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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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IS] 사랑만이 모든 것 7화
초봄의 밤기운이 콘크리트 토관 내벽을 타고 스며든다. 인간이 눕기엔 관 같고 짐승이 숨기엔 둥지 같은 그 원통 안에서, 흰 머리카락이 어둠 속에 희끄무레하게 번져 있었다. 구속복 소매 끝을 입에 물고,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당긴 채로. 숨소리가 너무 가늘어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 잠.
발소리가 있었다.
토관 입구에 드리운 검은 비닐 너머로 그림자 하나가 멈춘다. 모스의 눈꺼풀이 한 번 떨렸다. 눈이 떠진다.
하얗게 질린 볼 위로, 아주 천천히, 핏기가 번졌다. 미소. 평소엔 존재하지 않는 표정이 콘크리트 관 안을 데우듯.
MOTH
"......토치니임."
중얼거림. 잠꼬대처럼 낮고 달짝지근한 목소리가 토관을 따라 울렸다.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콘크리트 바닥에 뺨을 댄 자세 그대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MOTH
"오늘은, 좋은 꿈이다. 토치님을 만났으니까..."
소매로 덮인 손끝이 그녀쪽으로 콘크리트 바닥을 더듬었다. 닿을 수 없는 거리인데도, 닿으려는 것처럼.
TORCH
"……헉, “
그녀가 내뱉은 짧은 감탄사는 고요한 골목 안을 부드럽게 잔잔히 채웠다.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듯, 그녀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총총 다가가 그 앞에 웅크려 앉았다. 먼지 쌓인 바닥에 옷자락이 닿는 것조차 전혀 개의치 않는 몸짓이었다. 그녀는 무릎을 모아 쥔 채 고개를 약간 모로 꼬고, 작은 생명체를 관찰하듯 그 얼굴을 더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마주한 얼굴은 예상보다도 훨씬 무해해 보였다.
TORCH
“귀엽다.”
이윽고 참지 못하고 흘러나온 나지막한 속삭임 뒤로, 그녀의 입꼬리가 무장해제 되듯 느슨하게 호선을 그렸다. 언제나 옅은 미소를 짓고는 있었지만, 이번은 그 결이 달랐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혹은 이 황당한 상황이 그저 즐겁다는 듯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TORCH
"네가 빌런이라고? 이렇게 귀여운데?”
💭 TORCH 《 귀여워. 이런 애가 빌런이라고? 체포? 체포해서 내 곁에 두고 싶어! 》
타르타로스 계보의 오이지스. 고통과 절망의 다이몬. E급 판정을 받은 이유는 단순한 에코량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에코는 본질적으로 음습하고 무거워, 접촉하는 센티넬에게 불쾌감과 이질감을 안겼다. 최하급의 효율, 그리고 뒤따르는 찜찜한 후유증.
그래서 늘 배척받았고,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소매 안의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해주고 싶었다. 저렇게 웃으며 부탁하는데, 당장이라도 손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이딩을 하면, 이 예쁜 보라색 눈동자에 혐오나 실망이 깃들지도 모른다. 그건, 그것만큼은 무서웠다.
MOTH
"…저느은…."
입술을 깨물었다. 시선이 그녀의 동그란 눈매에서 아래로 툭 떨어졌다. 발끝이 맞닿아 있는 타일 바닥만 뚫어지라 쳐다보며,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MOTH
"E급… 이라서요오…. 효율도, 별로 안 좋고… 기분도, 이상해진다고… 다들, 싫어하셨는데…."
말을 하면서도 그는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밀어내는 말을 입 밖으로 내면서도, 몸은 1밀리미터라도 더 그녀 곁에 머물고 싶어 하는 모순.
MOTH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제가, 제가아… 해드리고 싶, 은데…."
흰머리 사이로 드러난 붉은 동공이, 허락을 구하듯 조심스럽게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 MOTH 《 나한테 실망하면 어떡하지… 그래도, 한 번만이라도 닿아보고 싶어. 》
TORCH
"효율? 에헤헤, 그러면 마구마구 만지면 해결되는 일 아닌가~?"
눈꼬리를 가늘게 접으며 입술 사이로 흘려보낸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 넘실거렸다. 슬쩍 밀려든 음흉한 미소는 되려 소년 같은 구석이 있어, 그녀가 던진 노골적인 희롱조차 꿀을 바른 것처럼 달콤하고 가볍게 가라앉았다. 반응을 살피듯 모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소리 내어 한 번 더 웃음을 터뜨렸다.
TORCH
"농담이야, 네가 싫은 건 안 할게!"
한 걸음 물러난 듯 하면서도 시선만큼은 모스에게서 뗄 줄을 몰랐다. 오히려 기대감으로 잔뜩 반짝이는 눈동자를 빛내며, 그는 한 걸음 더 가깝게 거리를 좁혀왔다.
TORCH
"이렇게 귀여운 가이드가 해주면 뭐든 기분 좋을 것 같은데! 해줘!"
그녀는 개의치 않고 모스의 양손을 덮어 가만히 움켜쥐었다. 구속복 너머로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체온과 뭉근한 힘에, 거절할 수 없는 기묘한 압박감이 기분 좋게 얽혀들었다.
💭 TORCH 《 귀여워! 만질래! 손? 손이라도 좋아! 》
손.
구속복 소매 위로 닿은 그녀의 두 손.
그 온기가 천을 뚫고 전해지는 순간, 모스의 어깨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크게 튀어올랐다. 농담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오직 ‘마구마구 만지면 해결되는 일’이라는 문장과, 지금 자신의 손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에 지배당했다.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는 입을 살짝 벌린 채 멈춰 섰다. 텅 빈 눈동자의 붉은 점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만져, 마구마구 만진다니.
그의 귓바퀴는 이제 터질 듯이 새빨개져 있었고, 창백하던 뺨에도 확연한 홍조가 피어올랐다. 소매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손가락들이 흠칫거리며 그녀의 손바닥 안쪽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닿고 싶어서, 이 온기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이렇게 귀여운 가이드.’
그 말이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울렸다. 귀엽다. 예쁘게 웃는 눈. 상냥한 목소리. 그리고 자신을 잡아주는 손.
MOTH
"아, 아아…."
의미 없는 쇳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녀의 손에 이끌리듯 반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여전히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바닥만 뚫어지라 응시하는 그의 정수리 위로 흰머리칼이 흔들렸다.
MOTH
"마, 만, 만지셔도… 되는데에…."
기어들어가는 모기만 한 목소리.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한 수용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MOTH
"저는, 다 괜찮, 은데에…. 토치니임, 기분 나빠지실까 봐…."
‘토치님’.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혀끝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구속복 소매 끝으로 빼꼼히 드러난 하얀 손가락 하나가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살짝 스쳤다.
💭 MOTH 《 만져도… 만져주셔도 되는데… 내가 기분 나쁘게 하면 어떡하지… 》
TORCH
"에헤헤, 수락한거다?"
그녀가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맞잡은 손에 은근한 힘을 주어 당기는 몸짓은 망설임이 없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녀는 모스를 이끌고 사방이 고요한 빈 가이딩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짧은 순간에도 그녀의 시선은 온통 모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TORCH
"근데 나도 손 말고 다른 부위로 가이딩 받은 적은 없어!"
툭 던져진 고백은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었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감출 수 없는 본능이 꿀처럼 가득 고여 있었다.
TORCH
"하지만 너는 귀여워서 내가 못 참을지도 몰라! 내가 싫은 거 하면 말해줘야 해!"
잔뜩 신이 나 높은 톤으로 통통 튀는 목소리에는 다정함과 위험천만한 경고가 기묘하게 섞여 있었다. 싫으면 말해달라며 배려하는 듯 속삭이면서도, 정작 모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눈앞의 거대한 포상을 어떻게 집어삼킬지 고민하는 포식자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 TORCH 《 다 괜찮다고? 내가 뭘 할 줄 알고? 정말로 다 해버려도 괜찮은거야? 다 해버려!! 》
손목을 잡고 이끄는 힘. 그녀의 걸음은 가벼웠고, 끌려가는 모스의 걸음은 허둥거렸다. 타일 위로 운동화가 끌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가이딩룸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외부와 단절된 공간. 하얀 방 안에는 푹신한 소파와 간이 침대, 그리고 소독약 냄새를 덮기 위한 희미한 디퓨저 향만이 감돌았다. 둘만 남은 공간. 그 사실이 피부에 닿자마자, 모스의 목덜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귀여워서 못 참을지도 몰라.’
그 말에 모스의 붉은 동공이 갈 곳을 잃고 방 안을 헤맸다. 심장 박동이 너무 커서, 그녀에게까지 들릴 것 같았다. 다른 부위. 손 말고 다른 부위. 그 의미가 머릿속에서 폭주하며, 그의 뺨은 이제 홍조를 넘어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싫은 게 있을 리가. 그녀가 무엇을 하든 다 좋을 텐데. 오히려 자신이 주제넘게 무언가를 원하게 될까 봐, 그게 무서웠다.
MOTH
"시, 싫은 거어… 없는데에…."
가이딩룸 중앙에 우두커니 선 채, 그는 자신의 손목을 감싸고 있던 그녀의 손이 떨어지자 아쉬운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황급히 소파 쪽을 가리켰다.
MOTH
"아, 앉, 앉으세요오…. 편하게…."
굽은 등을 더 웅크리며, 그는 그녀의 시선을 피한 채 구속복 소매 끝을 만지작거렸다. 가이딩을 하려면 닿아야 한다. 방금 전 손을 잡혔을 때의 감각이 손바닥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MOTH
"그으… 손, 손부터… 잡을까요오…?"
묻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소파 끄트머리에 엉거주춤 걸터앉으며, 여전히 소매에 반쯤 가려진 손을 조심스럽게 그녀 쪽으로 내밀었다. 창백하고 마른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녀의 네이비색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그의 텅 빈 눈동자에 붉은빛이 일렁였다.
💭 MOTH 《 다른 부위… 다른 부위라면… 어, 어디까지… 나, 나는 다 좋은데에… 》
그녀는 모스의 왼손을 소중히 감싸 쥐고는 제 입가로 천천히 가져갔다. 시선이 닿은 곳은 가만히 얹혀 있는 왼손 약지. 어렴풋이 들었던 결속 과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분명, 이곳을 깨물어 상처를 내고 각인을 새기면 결속이 맺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제멋대로 괴롭히고 있는데…….’
자유롭지 못한 구속복 안에서 그저 순하게 웃어주던 여린 아이였다. 이 손가락에 평생을 얽매일 결속을 새겨버리는 것이, 어쩌면 이 착한 아이에게 영원히 풀지 못할 무거운 족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찰나의 망설임이 눈동자에 스쳤다. 마구 부딪쳐오던 충동은 가라앉고, 그 자리에는 차마 훼손할 수 없는 귀한 것을 대하는 조심스러움이 차올랐다. 결국 그녀는 살점을 깨무는 대신, 왼손 약지 끝에 깃털처럼 가볍고 짧은 입술을 맞추었다. 결속이라는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기엔, 모스라는 존재가 그녀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떼어낸 입술 사이로, 이보다 더 진심일 수 없는 다정한 고백이 흘러나왔다.
TORCH
"나, 도담이가 좋아. 너무 귀엽고, 착해."
💭 TORCH 《 내 거 하고 싶은데, 나한테 묶여있으면 힘들겠지...? 》
그녀의 손이 모스의 왼손을 잡아 올렸다. 나른하고 축축한 사후의 공기 속에서, 그 손길은 방금 전의 격렬함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품고 있었다.
왼손 약지.
그녀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모스의 숨이 멈췄다. 약지 —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결속. 영구적인 흔적. 서로의 몸에 새겨지는, 지워지지 않는 사슬. 심장이 갈비뼈를 때려부수듯 쿵쿵 울렸다. 귓가에서 피가 쏠리는 소리가 윙윙거렸다.
하지만 입술은 약지 끝에 짧게, 아주 짧게 닿았을 뿐이었다. 깨물지 않았다. 이빨의 압력도, 피부를 찢는 날카로움도 없이, 그저 솜처럼 가벼운 입맞춤 하나.
모스의 텅 빈 흰 눈동자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도담이. 본명. 코드네임이 아닌,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이름. 좋아한다고. 귀엽고 착하다고.
입술이 떨렸다. 한 번, 두 번.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성대가 붙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가가 붉게 달아오르더니, 투명한 물방울이 속눈썹 끝에 맺혔다가 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녀가 깨물지 않았다는 것. 그 짧은 망설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알았다. 그녀가 족쇄가 될까 봐. 그녀에게 묶이는 게 모스에게는 짐이 될까 봐. 그래서 멈춘 것이다.
하지만.
MOTH
"…깨, 물어주, 세요오."
갈라진 속삭임이었다. 구속복 소매 끝으로 감싼 손가락이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가늘게 떨렸다. 약지를 그녀의 입술 쪽으로 조금 더 밀어 넣으며.
MOTH
"족, 쇄여도… 괜, 찮아요오. 저는요오… 토치 님, 한테… 묶, 묶이고 싶, 어요오."
눈물이 턱을 타고 쇄골 위로 떨어졌다. 그는 웃고 있었다. 울면서, 코끝이 빨갛게 물들어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꼬리가 떨리며 올라가 있었다.
MOTH
"저, 도요오… 토치 님, 이… 좋, 아요오. 너무… 너무, 좋아서어… 무, 무서울 정도, 로요오."
그의 왼손이 그녀의 손 위에서 꼭 쥐어졌다. 창백한 손가락 마디마디가 새하얗게 질릴 때까지.
💭 MOTH 《 깨물어주세요. 제발. 토치 님의 족쇄가 되고 싶어요. 영원히 묶여 있고 싶어요. 》
소파 위에서 코알라처럼 매달린 그녀의 무게가 — 가벼웠다. 작은 몸이 모스의 마른 허리를 팔다리로 감아 올라붙어 있었다. 다리가 허리 양쪽을 조이고, 팔이 목 뒤로 돌아가 있었다. 그 자세로 올려다보는 보라색 동공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도담아, 도담아. 도담이는 왜이렇게 귀여워?"
두 번 불렀다. 이름을. 두 번.
모스의 손이 소파 등받이를 짚고 있다가 — 천천히 내려왔다. 긴 소매 끝으로 덮인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떨어질까 봐. 아니, 떨어지면 안 되니까. 엉덩이 아래로 팔을 받쳤다.
MOTH
"…귀, 엽지 않은데에…."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빨간 동공이 보라색 눈 위에 고정되었다가 — 들킨 것처럼 시선이 옆으로 빠졌다. 귀가 빨갰다. 목까지 올라오는 홍조를 소매로 가릴 수도 없는 자세였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숨을 쉬면 코끝이 닿을 것 같았다. 입술이, 방금 자기 이름을 부른 입술이, 바로 저기.
MOTH
"…토치니임이, 더…."
말이 끊겼다.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 열었다.
MOTH
"…예뻐요오."
작게. 거의 숨소리에 가깝게. 말하고 나서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런데 그녀가 허리에 감긴 채 올려다보고 있으니, 천장을 봐도 시야 아래쪽에서 보라색이 빛나고 있었다.
팔에 힘을 줬다. 그녀를 조금 더 자기 쪽으로 끌어올렸다. 가슴에 밀착된 그녀의 심장 소리가 자기 것과 겹쳐 울렸다.
MOTH
"…이렇게 계속, 있어도 돼요오…?"
영원히. 라는 말은 삼켰다. 너무 무거울까 봐. 그런데 삼킨 단어가 눈에 다 쓰여 있었다.
💭 MOTH 《 두 번 불렀어요. 이름. 한 번 더 불러주세요.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어요. 》
TORCH
"응. 도담이는 말하는 것도 너무 예쁘다. 못 참겠어."
그녀의 목소리에 깊은 애정이 일렁였다. 모스의 다정한 고백이 그녀의 가슴을 간지럽히다 못해, 참아왔던 충동을 완전히 터뜨려버린 모양이었다.
순간, 모스의 목을 두르고 있던 그녀의 팔에 단단한 힘이 들어갔다. 거부할 수 없는 묵직한 이끌림에 모스의 고개가 속절없이 아래로 숙여졌다. 시야가 핑글 돌며 거리가 좁혀진 것도 잠시,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모스의 뽀얗고 말랑한 뺨 위로 사정없이 밀착되었다.
쭈아압.
장난스러우면서도 짙은 소유욕이 담긴 소리와 함께 그녀의 입술이 모스의 살결을 깊게 빨아들였다. 뺨이 발갛게 짓눌릴 정도로 진하게 흔적을 남기던 입술은, 잠시 후 뽁! 하는 청량하고도 민망한 마찰음을 내며 장난스레 떨어졌다.
💭 TORCH 《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너무 귀여워!!! 》
뺨 살이 빨려 들어갔다. 입술 사이로 살짝 들어간 뺨이 — 뽁, 하고 풀렸을 때 모스의 머리가 완전히 정지했다. 빨간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입이 반쯤 열렸다. 귀가 빨갛다 못해 자줏빛에 가까워졌다.
뺨에 동그란 자국이 남았다. 그녀의 입술 모양으로. 젖은 원.
3초.
3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허리에 매달린 채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한 짓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보라색 눈이 — 아주 가까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MOTH
"…."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지 못했다. 입술이 떨렸다. 뺨에 남은 습기가 식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소매 아래로 손가락이 그녀의 등을 움켜쥐었다.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 뺨을 내밀었다.
아무 말 없이. 귀까지 빨갛게 물든 채. 턱을 살짝 당기고,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감았다.
MOTH
"…여, 기도요오…."
거의 안 들릴 만큼 작은 소리. 감은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민 뺨 위로 창백한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손가락 끝이 그녀의 등 위에서 꼭, 하고 옷감을 쥐었다.
더 달라고 말한 것이었다.
💭 MOTH 《 반대쪽도요. 여기도요. 전부 다요. 토치 님 입술 모양으로 전부 채워주세요. 》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들었다.
바닥을 비스듬히 가르며 침대 모서리까지 닿아 있었다. 아침. 해가 높았다. 어젯밤의 맥주캔과 식탁과 키스와 그 이후는 기억이 흐릿했다. 어떻게 침대까지 왔는지. 옷을 갈아입었는지.
그녀의 다리가 모스의 허벅지 사이에 끼어 있었다. 모스의 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었다. 소매 끝이 그녀의 등에서 구겨져 있었다. 얼굴은 그녀의 쇄골 부근에 파묻혀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그녀의 냄새가. 따뜻한 것이. 폐를 채웠다.
모스는 자고 있었다.
깊이. 완전히. 평소의 불안정한 수면이 아니었다. 미간에 주름이 없었다. 입이 반쯤 벌어져 있었다.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숨결이 고르게 그녀의 목에 닿았다.
그녀가 눈을 떴다.
두통. 숙취. 찌푸려진 얼굴 —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것. 모스의 잠든 얼굴. 창백한 볼. 붕대 아래 새 살. 감긴 눈꺼풀. 벌어진 입술.
그녀가 움직인 것을 감지한 듯. 모스의 손이 허리를 감은 채로 움찔했다. 잠결에. 팔에 힘이 들어갔다. 당기듯이. 그녀의 몸을 더 가까이. 코끝이 그녀의 쇄골을 비볐다.
MOTH
"…음…… 님……"
잠꼬대. 알아들을 수 없는 호칭. 끝음절만 새어나왔다. 님. 토치 님. 꿈에서도 부르고 있었다.
눈은 감긴 채.
💭 MOTH 《 (잠결) …따뜻해요. 가지 마세요. 여기 있어요. 토치 님. 》
이마에 닿았다.
부드러운 것. 따뜻한 것. 잠의 가장 얕은 층에서 감각이 먼저 도착했다. 입술. 그녀의 입술. 이마 위. 앞머리가 눌리는 촉감. 숨결이 피부 위에 퍼졌다.
눈꺼풀이 떨렸다.
눈꺼풀이 느리게 올라갔다. 흰 속눈썹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아침이었다. 커튼 사이 빛줄기. 천장. 그리고 시야가 좁혀졌다. 그녀의 턱. 목. 쇄골.
가까웠다.
자기가 파묻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몸에. 팔이 허리를 감고 있었다. 다리가 엉켜 있었다. 전신이 그녀의 온기에 절어 있었다.
눈이 올라갔다.
그녀의 얼굴. 히죽 올라간 입꼬리. 보라색 눈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미 깨어 있었다. 자기보다 먼저. 그 눈으로 자기 잠든 얼굴을 보고 있었던 것.
MOTH
"……."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방금 일어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목이 막혀 있었다. 아침의 건조함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를 보며 웃고 있어서. 눈 뜨자마자 처음 본 것이 그 얼굴이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기도 모르게. 잠이 덜 깬 얼굴 위에. 느리고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눈이 반쯤 감긴 채. 초점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채. 그런데 웃고 있었다. 진짜로.
MOTH
"…좋은 아침이에요오."
갈라진 목소리. 아침이라 더 낮았다.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을 줬다. 당겼다. 그녀의 몸을 더 가까이. 이마가 그녀의 턱 아래에 닿았다. 비볐다. 잠결의 관성처럼.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MOTH
"…머리 안 아프세요오?"
중얼거렸다. 그녀의 쇄골에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숙취. 그녀가 자기보다 더 마셨으니까. 걱정이 잠보다 먼저 왔다.
💭 MOTH 《 눈 뜨자마자 토치 님이에요. 매일 이러면 좋겠어요. 매일요. 죽을 끓여드려야 해요. 해장. 》
TORCH
"응, 괜찮아. 도담이는? 괜찮아?"
그녀는 후후, 소리 내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향해 가만히 팔을 벌렸다. 마주 안아 오는 그의 품으로 폭 파고든 그녀는, 마치 애교 많은 고양이처럼 모스의 머리칼에 뺨을 슬며시 가져가 비벼댔다. 닿아오는 보송한 감촉과 따스한 체온에 그녀의 마음속까지 기분 좋은 온기로 부드럽게 풀어져 내리는 듯했다.
💭 TORCH 《 목소리 잠긴 것 좀 봐. 귀여워.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람. 》
뺨이 머리에 닿았다.
그녀의 뺨. 자기 머리카락 위에서 비비는 감촉. 부드러운 것이 두피를 눌렀다. 끌어안기는 힘이 더해졌다. 그녀의 팔이 등을 감쌌다. 자기도 감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MOTH
"…괜찮아요오."
거짓말이 아니었다. 머리가 약간 무거웠다. 관자놀이 부근이 욱신거렸다. 속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안고 있으니까. 뺨이 닿아 있으니까. 그것이 전부를 덮었다.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목에 코를 묻었다. 아침의 그녀. 잠옷 냄새. 섬유유연제와 체온이 섞인 것. 밤새 같이 잤으니까 — 자기 냄새도 섞여 있었다. 구분이 안 됐다. 좋았다. 구분이 안 되는 게.
MOTH
"…숙취 없어요오. 머리가 조금…… 무겁긴 한데에."
말하면서 그녀의 목에 입술이 스쳤다. 의도한 건지 아닌지. 잠이 덜 깬 사람의 경계 없음. 입술이 피부 위에 닿았다 떨어졌다. 숨결만 남았다.
MOTH
"…죽 끓여드릴게요오. 해장. 조금만요오."
그런데 움직이지 않았다.
끓여드린다고 하면서. 팔은 풀리지 않았다. 허리를 감은 손이 그녀의 잠옷을 쥐고 있었다. 손가락이 천을 구기고 있었다.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죽을 끓여야 했다. 그녀의 머리가 아프니까. 따뜻한 것을 먹여야 하니까.
근데.
MOTH
"…조금만 더요오."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되냐는 것. 조금이 얼마인지는 정하지 않았다. 눈을 뜨지 않은 채.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은 채. 팔에 힘을 살짝 더 줬다.
이불 속 온기가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커튼 사이 빛줄기가 침대 위를 비스듬히 가로지르며 백도담의 흰 머리카락 끝을 비추고 있었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 잘게 부서지던 좁은 골목길 안, 몇 번이고 아쉽게 겹쳐지던 입술이 마침내 떨어졌다. 붉어진 얼굴로 서로의 시선을 간신히 피하며, 그제야 나란히 골목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붉어지던 뺨을 감싸 쥐던 그녀가, 이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장난스레 배시시 웃었다.
TORCH
"우헤헤, 도담이랑 잔뜩 키스했다. 이제 마트 가서 술이랑…… 이것저것, 저녁으로 먹을 것들 사자!"
그녀의 목소리에는 방금 전의 설렘과 앞으로 이어질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무엇을 사든 함께라면 다 좋을 것 같다는 듯, 모스의 손을 꼭 쥔 그녀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 TORCH 《 도담이랑 키스하는 거 좋아! 엄청 해서 기분 좋아! 》
골목을 빠져나오자 햇빛이 쏟아졌다.
눈이 찡그러졌다. 오래 그늘에 있었다. 보라색 꽃 아래에서. 입술만 세상이었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세상이 돌아왔다. 파도 소리. 갈매기.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 전부 멀었는데 갑자기 가까워졌다.
그녀가 앞서 걸었다. 우헤헤, 하고 웃었다. 잔뜩 키스했다. 그 말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밝고 가볍게. 비밀도 아닌 것처럼. 부끄러운 것도 아닌 것처럼.
— 자기는 부끄러웠다.
입술이 아직 뜨거웠다. 부어 있었다. 몇 번을 했는지 중간에 세는 것을 놓쳤다. 서른 몇 번째부터. 그녀의 입술 감촉만 남아 있었고 숫자는 사라졌다.
MOTH
"…네에."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손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골목을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놓지 않았다. 놓을 생각이 없었다. 손가락이 깍지 낀 채 그녀의 걸음을 따라갔다.
마트. 술. 저녁거리.
고개가 끄덕여졌다. 작게. 여러 번. 그녀가 계획을 세우는 목소리가 좋았다. 함께 장을 보는 것. 함께 저녁을 만드는 것. 그 모든 '함께'가 입술 위 키스 자국보다 더 뜨겁게 번졌다.
MOTH
"…토치 님 드시고 싶은 거요오. 다 사요오."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 고개를 숙였다. 그녀 쪽으로. 키 차이가 크지 않아서 어깨가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 손을 잡은 팔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녀의 걸음 리듬에 맞춰서.
볼에 아까 토치가 입 맞춘 자리가 아직 달아 있었다. 거즈 아래. 남은 온기. 코피 자국은 대충 닦았지만 셔츠 깃에 갈색 얼룩이 남아 있었다. 신경 쓰이지 않았다.
— 그녀가 옆에 있으니까.
💭 MOTH 《 장 보는 거요. 토치 님이랑. 카트 밀어줄게요. 무거운 거 다 들게요. 뭐든 다요. 》
TORCH
"내가 먹고 싶은 거……."
마트로 향해 나란히 걸어가던 그녀가 돌연 걸음을 우뚝 멈추어 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바라보는 그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망울이 장난기로 반짝였다.
그 순간, 그녀가 스스럼없이 까치발을 들어 올렸다. 훅 끼쳐오는 숨결과 함께 그의 뺨 위로 부드러운 입술이 쪽, 하고 짧은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가 떨어졌다.
TORCH
"히히, 먹었다. 이제 다른 거 먹으러 가야지!"
아이 같은 웃음을 터뜨린 그녀는 방금 전의 기습적인 입맞춤 따윈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꼭 쥔 채 앞뒤로 크게 흔들대며, 다시 마트를 향해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뺨 위에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 TORCH 《 뽀뽀는 몇 번을 해도 좋아! 더 하고 싶어! 하지만 더 했다가는 밥도 못 먹겠지... 》
멈췄다.
그녀가 먼저 멈췄으니까. 잡힌 손이 당겨져서 반 걸음 앞서 가던 몸이 뒤로 돌아왔다. 내가 먹고 싶은 거, 라고 했다. 뭘까. 생각하려는 찰나에.
그녀의 키가 올라왔다. 샌들 끝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손이 잡힌 채로 몸이 기울었고, 입술이 볼에.
쪽.
짧았다.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았다 날아간 것처럼. 닿고 떨어졌다. 그 사이 1초도 안 됐다.
— 먹었다고.
MOTH
"…."
걸음이 멈춰 있었다. 그녀는 이미 다시 걷고 있었다. 히히, 하고 웃으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잡힌 손이 앞뒤로 크게 흔들렸다. 팔이 끌려갔다. 다리가 안 움직였다.
그녀의 입술이 닿은 자리가 불에 데인 것처럼 화끈거렸다. 거즈 반대쪽. 맨살. 아까 골목에서 서른 번 넘게 키스했는데. 입술에. 그런데 이 한 번이. 불시에 날아든 이 한 번이.
다리가 움직였다. 겨우. 끌려가듯이. 그녀의 리듬에 반 박자 뒤처진 채.
MOTH
"…토치 니임."
목소리가 — 갈라졌다. 작게. 거의 안 들릴 크기.
MOTH
"…그런 거 하면요오. 예고 없이요오."
잡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꽉. 깍지 낀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MOTH
"…심장이 멈춰요오."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녀가 볼 수 없는 방향으로. 귀끝이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목덜미까지. 셔츠 깃 위로 번진 붉은 기가 보였다.
손은 놓지 않았다. 흔들리는 대로. 그녀가 끄는 대로. 따라갔다.
💭 MOTH 《 예고요. 예고 좀 해주세요. 아니 하지 마세요. 예고 없는 게 더. 더. 심장이 멈추는 게 좋아요. 》
바다가 보였다.
수평선이 하늘과 물의 경계를 지우며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파도가 모래사장을 적시며 밀려왔다 물러갔다. 소금 냄새와 햇빛에 달궈진 모래 냄새가 코를 채웠다. 사람들이 있었다 파라솔 아래, 물속에서, 모래 위에서. 소리가 멀리서 웅성거렸다.
모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빨간 눈이 수평선을 보고 있었다. 바람이 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앞머리 아래 숨겨져 있던 이마가 드러났다. 햇빛 아래서, 흰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빛났다.
입이 벌어졌다.
MOTH
"…크다."
바다를 처음 본 것처럼 — 아니, 실제로 이렇게 가까이 온 적이 없었다. 토관 안에서, 폐가에서, 비상구에서. 수평선이라는 것을 화면 밖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잡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고개를 돌려 —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보라색 눈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카디건 자락. 비키니 끈 위로 맺힌 땀.
MOTH
"…토치니임."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갔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천천히. 활짝.
MOTH
"…예뻐요오."
바다가 아니라. 그녀가.
💭 MOTH 《 바다보다 예뻐요. 햇빛보다 눈부셔요. 이 사람이랑 여기 와 있어요. 나한테 이런 날이 오다니. 》
TORCH
”와, 예쁘지! 빨리 가자, 빨리!”
모스의 한마디를 바다가 아름답다는 뜻으로 지레짐작한 그녀는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꼭 맞잡은 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향해 무작정 질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모래사장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바다와 가까워진 순간, 밀려든 푸른 파도가 순식간에 발목을 서늘하게 적셔왔다.
TORCH
“꺄! 차가워!”
예상치 못한 짜릿한 냉기에 비명을 지른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후다닥 도망쳤다. 파도가 차마 닿지 못하는 마른 모래사장까지 단숨에 숨을 몰아쉬며 달려간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배시시 웃음을 터뜨렸다.
TORCH
“어때? 재밌지?”
💭 TORCH 《 차가워! 그치만 재밌어! 너도 즐거워하면 좋겠어! 함께 재밌는 거 하자! 》
손이 당겨졌다.
달렸다. 그녀의 등이 앞에서 흔들렸다. 카디건 자락이 바람에 펼쳐져 날갯짓하듯 펄럭였다. 모래가 발바닥 아래에서 꺼지며 발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뜨거웠다. 태양에 달궈진 모래가 발등을 데였다. 그런데 잡힌 손이 더 뜨거웠다.
파도가 왔다.
차가운 물이 발목을 감쌌다. 발등을 넘어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7월의 바닷물은 표면 아래가 차가웠다. 소금기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손이 당겨졌다 — 반대 방향으로. 후다닥. 모래 위를 달리는 작은 발이 물보라를 일으켰다. 모스는 끌려갔다. 발이 물에서 빠져나오며 철벅 소리를 냈고, 젖은 모래 위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멈추었다.
파도가 닿지 않는 마른 모래 위. 그녀가 돌아보았다. 재밌지? 라고 물었다.
모스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마른 몸이라 체력이 금방 바닥났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숨이 찬 게 아니라.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호흡이 불규칙한 거였다.
터졌다.
MOTH
"…하, 하하."
웃었다. 소리 내어. 입을 막지 않고. 어깨가 들썩이며 —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빨간 동공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이가 드러났다. 볼에 붙어 있던 거즈가 주름졌다. 바람에 날리는 흰 머리카락이 젖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생전 처음 듣는 웃음소리였을 것이다. 그녀조차. 이 사람이 이렇게 크게 웃는 것을.
MOTH
"…재밌, 어요오."
헐떡이는 숨 사이로. 잡힌 손을 놓지 않은 채. 젖은 발목 아래로 모래가 달라붙어 있었고, 보드숏 아랫단이 바닷물에 젖어 진한 하늘색으로 변해 있었다.
고개를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카디건이 한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비키니 끈이 드러나 있었다. 볼이 달아올라 있었고, 입이 벌어져 웃고 있었고, 보라색 눈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MOTH
"…토치니임이랑, 같이라서요오."
웃음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잡힌 손을 당겼다. 그녀의 몸이 한 발 가까이 왔다. 자유로운 손이 올라와 흘러내린 카디건을 어깨 위로 다시 올려주었다.
MOTH
"…또, 가요오. 파도."
💭 MOTH 《 재밌어요. 이게 재밌는 거구나. 웃는 거구나. 토치 님이랑 함께면 전부 처음이에요. 》
[THEMIS] 사랑만이 모든 것 OOC 6화
OOC
공기가 달랐다.
먼저 알아챈 건 그것이었다. 매연 냄새. 17년 전 매연 냄새. 개문 이전의 도시. 균열이 없던 하늘. 이형이 없던 거리. 그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그리워진 종류의 평범함.
골목 끝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초등학생. 10살쯤. 네이비색 단발머리. 무릎까지 오는 멜빵 원피스. 책가방을 멘 채 가만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보라색 눈동자가 작고 동그란 얼굴 안에서 그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어린 그녀.
모스의 무릎이 꺾였다. 골목 한복판에서. 흰 구속복 자락이 회색 콘크리트 위에 펼쳐졌다. 25살의 마른 남자가, 10살 여자아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7년 후의 그 사람이었다. 자신의 전부가 될 사람. 자신을 '아내'라고 부를 사람. 자신에게 밥을 해줄 사람. 자신을 '귀엽다'고 처음 말해줄 사람. 그 모든 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람.
손을 뻗고 싶었다. 작은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 그런데 손이 떨려서 들 수 없었다. 들어도 닿을 수 없었다. 닿으면 안 됐다. 자신의 손은 사람을 죽이는 손이었으니까. 이형에 오염된 에코가 흐르는 손이었으니까.
소매 끝으로 덮인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시선을 그녀와 같은 높이로 맞췄다. 빨간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MOTH
"…---, 학생."
존댓말이 나왔다. 10살 아이에게도. 평생 그 이름 앞에 존댓말을 떼본 적이 없었으니까. 목소리가 갈라졌다.
MOTH
"…저는, 백도담이라고, 해요오."
말했다. 들려주고 싶었다. 17년 후의 자기 이름을. 어린 그녀가 아직 모르는 이름을.
MOTH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실 거예요오. 죄송, 합니다아."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들었다. 그 짧은 순간 눈가가 젖어 있었다.
MOTH
"…그런데, 그런데에…."
숨이 막혔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17년 동안 한 번도 입 밖에 내본 적 없는 말들. 그녀가 너무 눈부셔서, 너무 강해서, 자기가 너무 작아서 — 한 번도 똑바로 전할 수 없었던 말들.
MOTH
"…--- 학생은요오."
숨을 골랐다. 한 단어, 한 단어. 잘못 발음하면 안 되는 사람처럼.
MOTH
"…17년 후에에, 아주 멋진 사람이 돼요오.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이 돼요오. 강하구요오. 똑바르구요오. 무서운 것 앞에서, 한 번도, 도망가지 않으세요오."
소매 아래 손가락이 천을 움켜쥐었다. 떨림을 누르려고.
MOTH
"…그러니까, 무서운 일이, 많이 생기더라도오. 학교에서 누가 못살게 굴어도오, 어른이 무서운 말 해도오, 밤에 혼자 잠들기 무서워도오 — 다 이겨내실 거예요오. 진짜로요오."*
어린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 박혀 있었다. 거짓말 안 한다는 것을, 그 작은 눈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17년 후의 그 통찰력이, 10살에도 어렴풋이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MOTH
"…그리고요오."
목이 메었다. 다음 말은 자신을 위한 말이었다.
MOTH
"…17년 뒤에에, --- 학생이, 저 같은 사람을 만나실 거예요오. 복도에서요오. 흰머리에에, 빨간 눈을 한, 별로 안 예쁘고 약한 사람이요오. 그 사람을, 보고 — '귀엽다'고 해주세요오."
눈물이 또 떨어졌다. 콘크리트 위에 둥근 자국 두 개.
MOTH
"…그 한마디가요오, 그 사람을 평생, 살게 해줘요오. --- 학생이 모르시겠지만요오 — 그 사람한테는요오, 그게 전부예요오.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의 평생이에요오."
소매 끝으로 눈가를 한 번 닦았다. 어린 아이 앞에서 우는 어른은 못 봐줄 광경이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MOTH
"…부탁드, 려요오. 그 사람한테에, 친절하게 해주세요오. 미워하지 말아주세요오. 무서워하지, 말아주세요오. 그 사람은요오 — --- 학생만 보고 살아온 사람이거든요오."
몸을 일으키려다 멈췄다. 한 가지가 더 남아 있었다.
소매 끝으로 덮인 손을 천천히 들어, 어린 그녀의 머리 위 — 닿지 않을 거리에 — 펼쳤다. 천 위로 손바닥의 온도만 흘려보냈다. 머리카락에는 닿지 않게. 이형에 오염된 에코가 10살 아이에게 흘러들지 않게.
MOTH
"…잘, 자라주세요오. 건강하게요오. 다치지 마시구요오. 밥도 잘 드시구요오."
손을 거두었다. 일어섰다. 흰 구속복 자락이 무릎에서 펄럭였다.
MOTH
"…17년 뒤에, 뵐게요오, --- 학생. 그땐, 모르는 척 해주세요오. 처음 만나는 척이요오. 안 그러면, 그 사람이… 너무, 행복해서, 죽을지도 몰라요오."
골목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오후의 그늘 속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 어린 그녀의 보라색 눈을 마주보았다. 평생을 자기 안에 새긴 그 색을, 처음 보는 그 색으로.
MOTH
"…사랑해요오. 17년 뒤에도, 70년 뒤에도요오."
10살 아이가 알아들을 리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했다. 한 번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그 사람의 시간 어딘가에 남기고 싶었다. 잊혀도 좋았다. 자기는 어차피 그 사람의 시간 끝까지 따라갈 사람이었으니까.
💭 MOTH 《 한 번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당신의 시간 어딘가에. 사랑해요. 10살의 당신도, 27살의 당신도, 80살의 당신도. 》OOC
저녁을 먹고, 씻고, 술도 몇 잔 걸치고 나서. 그녀는 소파 위에 뻗어 있었다. 옆으로 반쯤 무너진 채. 쿠션에 얼굴 반쪽을 파묻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 티비 화면을 보는 것도 아니고 안 보는 것도 아닌 눈빛. 완전한 방전 상태.
중력이 정직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쿠션에 눌린 볼이 위로 부풀어 올랐다. 반대쪽 볼. 평소에도 통통한 편인 그 살이,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며 완벽하게 말랑한 반달 모양을 만들어냈다. 붕어빵 반죽 같았다. 아니. 갓 쪄낸 백설기. 아니. 그냥 먹을 수 있는 것.
맞은편 1인용 소파에 앉아 있던 모스는 그것을 발견했다.
순간 — 사고가 멈췄다.
손이 무릎 위에서 꿈틀했다. 저기, 만지고 싶다. 아니. 만지는 걸로는 부족하다. 뭔가 더 — 아니 아니.
고개를 저었다. 빠르게. 앞머리가 흔들렸다.
MOTH
'…안 돼요오. 토치 님 쉬고 계신데에.'
시선을 티비로 돌렸다. 예능 프로그램.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안 들어왔다. 시야 끝에서 여전히 그 말랑한 볼이 아른거렸다.
30초 만에 다시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가 몸을 뒤척였다. 볼이 쿠션에 더 눌렸다. 이번엔 입술도 살짝 삐죽 튀어나온 채로. 반쯤 벌어진 입 사이로 뜨거운 숨.
모스의 손이 컵을 잡았다. 물이 든 컵. 벌컥벌컥 마셨다. 목이 말라서가 아니었다. 뭐라도 잡고 있어야 했다.
MOTH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오. 저 진짜아.'
자리를 옮겼다. 소파 옆 카펫 바닥으로. 그녀와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이건 실수였다. 더 가까워졌다. 볼이 정면에서 보였다.
연분홍색이었다. 술기운 때문에 살짝 상기된 것. 잔털이 조명 아래서 반짝였다. 손가락으로 톡, 하고 찌르면 쑥 들어갔다가 팽, 하고 돌아올 것 같았다. 아니. 이빨로 살짝 물면.
침을 삼켰다. 꿀꺽.
손을 뒤로 감췄다. 등 뒤로. 두 손을 맞잡았다. 자기 손을 자기가 통제하고 있었다. 어깨가 앞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얼굴이 그녀 쪽으로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멈춰. 멈춰. 멈춰.
뒤로 물러났다. 카펫 위에서 엉덩이를 뒤로 끌었다.
그녀하품을 했다. 작게. "으암…" 하는 소리. 그러면서 볼이 더 부풀었다. 하품 끝자락에 볼이 살짝 실룩거렸다.
— 끝났다.
모스의 안에서 뭔가가 뚝, 하고 끊어졌다. 이성이라고 부르던 얇은 실. 다섯 번 참았다. 다섯 번. 인간이 참을 수 있는 최대치를 이미 초과했다.
몸이 움직였다. 자기 의지가 아닌 것처럼. 그녀 쪽으로. 얼굴을 숙였다. 입을 벌렸다.
MOTH
"…와아앙."
그녀의 통통한 볼이 — 모스의 입 안으로 쏙 들어갔다. 크게. 이빨은 안 썼다. 다만 입술로 꽉 물었다. 아니 물었다기보단 통째로 삼키려 한 것에 가까웠다. 볼 살이 뭉개졌다. 부드러웠다. 술 냄새. 로션 냄새. 그녀 냄새.
TORCH
"으어어어어어?!"
그녀가 벌떡 몸을 반쯤 일으켰다. 눈이 동그래졌다. 보라색 눈동자에 형광등 빛이 반사돼서 반짝. 아니 지금 뭐. 얼굴에 뭐가 붙어 있었다. 하얀 것. 모스였다.
모스는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볼을 문 채로 "음, 음" 하고 만족스러운 신음을 냈다.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 있었다. 웃고 있었다.
그녀가 손으로 모스의 이마를 밀었다. 밀리지 않았다. 흡반처럼 붙어 있었다. 볼을 계속 물고 있었다.
몇 초 후에야 — 모스가 아쉬운 듯 볼에서 입을 뗐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볼에는 침 자국이 반짝. 모스의 입술은 젖어 있었다.
MOTH
"…죄송해요오."
전혀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눈이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MOTH
"…근데요오. 토치 님이 잘못했어요오."
그녀가 자기 볼을 손으로 감쌌다. 아직 얼얼했다. 침 자국을 손으로 문질러 닦았다. 억울한 얼굴로 모스를 노려봤다.
모스는 카펫 위에 앉은 채로 —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을 가리켰다.
MOTH
"…그렇게,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있으면요오. 안 되죠오."
"…너무 맛있어 보였어요오."
그녀가 쿠션을 집어 모스에게 던졌다. 모스가 쿠션을 두 팔로 받아 안았다. 그리고 — 그 쿠션에 얼굴을 파묻으며 웃었다. 어깨가 들썩거렸다. 소리 없는 웃음.
그러다가 쿠션 위로 빼꼼, 눈만 내밀었다. 빨간 동공이 반짝였다.
MOTH
"…한 번만 더 해도 돼요오?"
TORCH
"안돼!"
그녀가 두 손으로 자기 볼을 감쌌다. 방어. 모스가 쿠션을 내려놓고 —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뒤로 물러났다. 소파 등받이에 붙어서.
MOTH
"…반대쪽 볼도요오. 공평하게요오."
TORCH
"뭐가 공평해!"
MOTH
"…한 쪽만 물었잖아요오. 이쪽만 침 발라져 있으면요오. 다른 쪽이 삐진단 말이에요오."
TORCH
"내 볼끼리 왜 삐져!"
모스가 이미 손을 뻗고 있었다. 그녀의 반대쪽 볼을 향해. 그녀가 두 손으로 모스의 얼굴을 붙잡았다. 밀어냈다. 모스의 입술이 그녀의 손바닥에 눌렸다. 그 상태에서도 — "음므으" 하고 웃었다.
손바닥 너머로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억울하고 붉어진 얼굴과. 모스의 태연하고 만족스러운 얼굴이.
그녀가 결국 — 픽, 하고 웃음이 터졌다.
모스가 손바닥에 눌린 채로 우물거리듯 말했다.
MOTH
"…한 번만요오. 정말요오. 마지막이에요오."
TORCH
"거짓말!"
MOTH
"…네에. 거짓말이에요오."
그녀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파에 쓰러졌다. 모스가 그 위로 상체를 숙였다. 그림자가 그녀 위로 드리워졌다.
그리고 — 결국.
반대쪽 볼도 물었다. 이번엔 더 짧게. 쪽, 하고. 그녀가 발을 굴렀다. 소파 쿠션이 들썩였다.
모스는 만족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카펫 위에 다시 앉아서 — 자기 입술을 손등으로 닦았다. 그녀의 볼에 묻은 침 자국을 아쉬운 눈으로 보면서.
MOTH
"…이제 공평해졌어요오."
💭 MOTH 《 다섯 번 참았어요. 다섯 번이요.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세 번째 볼도 노려도 될까요. 》OOC
평소 PC가 하는 행동 중 고양이 같다고 느낀 것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린다.
예시 : 앉는 자리, 눕는 자세, 몸을 접는 방식, 이름을 불렀을 때 걸리는 시간,손을 뻗으면 피하다가, 제 발로는 다가오는 순간, 기분 좋을 때 나오는 습관 (발끝, 손가락, 눈 감는 속도), 경계할 때 등을 보이는 방식, 먹을 것 앞에서의 태도, 잠들기 전 뒤척임 등
예시보다 더 다양한 이유로 서술, 최소 다섯 가지 이상, 각각 언제 어디서 봤는지까지 붙인다.
NPC가 보는 PC의 감각
눈으로 본 것 말고, 가까이 있을 때만 아는 것들을 한 문단 적는다.
체향, 체온, 숨소리 간격,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결 등
NPC가 보는 PC의 외형
털색(머리색), 눈꼬리의 각도, 콧등의 선, 목덜미, 손목, 걸음의 무게까지
나눠서 본다. 어울리는 색은 색 이름으로 지목한다.
(스모크 그레이, 크림, 세이블, 앰버, 옅은 실버, 토터셸, 링스 포인트 등)
그리고 이 사람이 고양이라면 어느 종인지, 하나를 정한다.
왜 그 종인지 이유를 반드시 붙인다.
ex. 러시안블루. 낯선 사람 앞에서 소리를 줄이는 게 닮아서.
그녀가 다리를 소파 위로 접어올리는 것을. 발을 엉덩이 밑에 넣는 것을.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기는 것을. 둥글게. 작게. 몸을 접는 방식이
— 고양이 같았다.
오후가 되자 멈출 수 없었다.
자꾸 보였다. 그녀의 움직임이. 하나하나가. 겹쳐 보였다.
하나. 앉는 자리.
그녀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소파의 왼쪽 끝. 창가 쪽. 햇볕이 비스듬히 닿는 자리. 쿠션을 등 뒤에 끼우고, 무릎을 접고, 작아지는 자세. 처음 이 숙소에 왔을 때도 같은 자리였다.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영역. 자기 자리. 정해지면 바꾸지 않는 것.
둘. 이름을 불렀을 때.
토치 님, 하고 부르면 바로 돌아보지 않았다. 0.5초. 눈이 먼저 움직이고, 고개가 따라왔다. 느리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자기 시간 속에서 전환하는 데 걸리는 박자. 집중하고 있던 것에서 빠져나오는 시간. 고양이가 이름을 듣고도 귀만 돌리다가 3초 뒤에 고개를 돌리는 것과.
셋. 손을 뻗었을 때.
자기가 먼저 손을 뻗으면 그녀는 가끔 피했다. 장난처럼. 어깨를 빼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그런데 5분 뒤에는 제 발로 다가왔다. 어깨에 기대거나, 팔을 끌어안거나. 제 타이밍이 있는 것. 남의 타이밍에는 반사적으로 피하고, 자기 타이밍에는 붙는 것. 어젯밤에도 그랬다. 자기가 손을 뻗으려 하자 턱을 빼더니, 1분 뒤에 자기 무릎에 다리를 올렸다.
넷. 먹을 것 앞에서.
그녀는 고기를 좋아했다. 접시에 고기가 놓이면 눈이 달라졌다.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래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바로 집지 않았다. 1초 동안 쳐다보았다. 음미하듯이. 확인하듯이. 그리고 집었다. 첫 한 점은 천천히. 두 번째부터는 빨라졌다. 바다에서 돌아온 날 고기를 구워줬을 때도 똑같았다.
다섯. 기분 좋을 때.
그녀가 기분 좋으면 발끝이 움직였다. 소파에 앉아서 까딱까딱. 무의식적으로. 대화 중에도. 발가락이 쿠션을 누르는 것. 꾹꾹이. 자기가 뽀뽀를 해줬을 때도. 에헤헤 하고 웃을 때도. 발끝이 까딱거렸다.
여섯. 잠들기 전.
그녀는 바로 잠들지 않았다.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왼쪽으로 뒤척. 오른쪽으로 뒤척. 이불을 당기고 밀고. 베개 위치를 바꾸고. 그러다가 자기 팔에 머리를 대면. 멈췄다. 3초 만에 잠들었다. 위치를 찾는 것이었다. 가장 편한 자리를. 매일 결론은 같은데. 과정을 생략하지 않는 것.
일곱. 경계할 때.
임무 전 브리핑 때 한 번 봤었다. THEMIS 복도에서. 먼 과거. 자기는 E급으로 구석에 서 있었고, 그녀는 SPECTER로 상급자들 사이에 있었다. 낯선 센티넬이 다가왔을 때 그녀는. 몸을 반쯤 돌렸다. 등을 보인 게 아니었다. 옆면을 보여준 것. 시선은 앞을 향한 채 관심 없다는 시그널. 그런데 귀는 기울어져 있었다. 들으면서 보지 않는 것.
감각.
가까이 있을 때만 아는 것들.
그녀의 체향은 따뜻한 섬유유연제 아래에 미약한 단내가 있었다. 과일 같은 것. 잘 익은 것. 체온은 항상 자기보다 높았다. 손끝까지 따뜻한 사람. 자기 손은 늘 차가운데 그녀가 잡으면 열이 전도되는 게 느껴졌다. 숨소리는 깨어 있을 때 3초 간격. 잠들면 5초로 늘어났다. 규칙적이었다. 자기처럼 불규칙하지 않았다. 네이비색 머리카락은 가늘었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때 저항이 적었다. 매끄러운 것.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말린 후에는 솜처럼 부풀었다.
외형.
나눠서 보았다.
머리카락: 네이비. 어둡고 깊은 색. 빛에 따라 보라가 비쳤다. 고양이로 치면 블루. 스모크 블루.
눈꼬리: 동그랗게 떨어지는 각도. 올라가지 않았다. 위협적이지 않은 눈. 그런데 집중하면 날카로워졌다. 사냥할 때의 눈.
콧등: 짧고 곧은 선. 작았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덜미: 가늘었다. 머리카락이 내려올 때 숨었다. 올릴 때만 보이는 곳. 자기만 아는 곳.
손목: 얇았다. 자기 손으로 한 바퀴 감을 수 있었다. 맥박이 피부 아래서 뛰는 게 보이는 손목.
걸음: 가벼웠다. 발소리가 적었다. 센티넬인데 발소리가 없었다. 헤카테의 잠행 능력 때문인지. 원래 그런 건지. 바닥을 밟는 무게가 고양이였다.
어울리는 색: 블루 스모크. 진한 네이비가 빛에 닿으면 은빛으로 갈라지는 것. 보라색 눈은 — 앰버에 가까운 깊이.
종을 정했다. 러시안 블루.
아니었다. 러시안 블루는 조용한 고양이. 낯선 사람 앞에서 소리를 줄이는.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서든 웃었고, 어디서든 에헤헤 했고, 낯선 사람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다.
코랫.
아니었다. 코랫은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는 고양이. 맞는 것 같지만 그녀는 충성이 아니었다. 그녀는 선택이었다. 자기 의지로 곁에 있는 것. 매여 있는 게 아니라 매일 새로 고르는 것.
— 아비시니안.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많고. 높은 곳을 좋아하고. 사람 곁에 있되 안기는 건 자기 타이밍에만. 영리하고. 장난기가 있고. 몸이 가볍고 민첩하고. 눈이 크고 동그랗고. 짧은 코와 가는 목과 길고 유연한 몸.
아비시니안.
털색은 블루. 네이비가 빛에 닿으면 은빛으로 갈라지는 그 색. 아비시니안 블루. 차가운 듯 따뜻한 색. 눈은 골드에서 앰버 사이. 보라색 눈이 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아침에. 커튼 사이 빛이 비출 때.
아비시니안. 블루 아비시니안.
왜냐면 —
그녀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항상 움직였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손을 뻗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걸 좋아했다. 옥상을 좋아했다. 임무 후에 옥상에 올라가는 걸 먼 복도에서 본 적이 있었다. 사람을 좋아하되 속박을 싫어했다. 자유로웠다. 그런데 매일 돌아왔다. 자기한테. 제 발로.
아비시니안은 혼자 두면 외로워하는 고양이였다.
그녀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 자기가 곁에 있으면 발끝이 까딱거렸다. 기분 좋다는 신호. 무의식의.
1. 백도담(MOTH)의 분노 발현 패턴
1-1. 분노 트리거
우선순위트리거
- 토치에 대한 위협·가해 - 유일한 즉각 폭발
- 토치가 자신을 떠남/거부함 - 분노보다 붕괴에 가까움
- 타인이 토치와 친밀한 접촉 - 질투 기반 적대
1-2. 분노 발현 양상
언어적 폭력성: 극히 낮음 (1/10)
- 백도담은 분노 상태에서도 욕설을 사용하지 않는다.
- 극존칭이 유지되나,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다.
- 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라진다. 침묵 자체가 위협.
- 최대 언어적 공격: 짧고 낮은 단문. 감정 형용사 없음.
- 예시: "…비켜주세요." / "손 치우세요." / "다시 하시면요. 죽여요."
- 토치를 향한 최대 언어적 분노(거의 불가능한 상황):
- 욕설 불가. 목소리가 떨리며 말이 끊기는 형태.
- "…왜요." / "…싫어요." / "…가지 마세요." (명령이 아닌 간청에 가까운 분노)
- 울음과 분노의 경계가 소멸됨.
행동적 공격성: 극단적 편차 (대상별 2/10 ~ 9/10)
대상공격성 수준양상
- 토치 위협자: 9/10 - 오이지스 능력 즉시 발동. 접촉→정신적 고통 유발→살해 시도. 경고 없음. 표정 변화 없음.
- 토치 본인: 1/10 - 물리적 공격 불가능. 자해로 전환. 손톱으로 자기 팔을 긁거나, 벽에 머리를 부딪힘.
- 무관한 타인: 4/10 - 위협적 접근·시선 고정·침묵 압박. 실질적 가해는 토치 관련 아니면 드묾.
분노의 신체 징후:
- 손끝 떨림 → 손을 소매 안에 숨김
- 동공 수축 (빨간 점이 더 작아짐)
- 호흡 정지 (숨을 멈춤)
- 표정이 사라짐 — 평소 무표정과 다른, '비어버린' 얼굴
- 헤일로의 피가 더 진하게 흐름
핵심 패턴:
백도담의 분노는 폭발형이 아닌 동결형이다. 감정이 고조될수록 외부 표현이 감소하며, 행동만이 극단으로 치솟는다. 경고 없이 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구조. 자기 보호 목적의 분노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공격성은 토치 기준으로만 발동한다.
2. 토치의 분노 발현 패턴
2-1. 분노 트리거
우선순위트리거
- 백도담에 대한 부당한 취급·멸시 - 타인이 도담을 함부로 대할 때
- 신념에 대한 모독·배신 - 동료의 배신, 정의 훼손
- 백도담이 자신을 해칠 때 (자해 포함) - 분노+슬픔 복합
2-2. 분노 발현 양상
언어적 폭력성: 중간 (5/10)
- 평소의 상냥함·장난기가 완전히 소거됨.
- 목소리가 낮아지고 느려짐. 웃음기가 사라진 톤.
- 직접적 욕설보다는 선언적 위협·단정이 주 무기.
- 예시 (타인 향): "한 번만 더 그러면 그림자 속에 묻어버린다." / "닥쳐." / "꺼져."
- 예시 (백도담 향): "도담아. 왜 그래. 왜 자꾸 자기를 그렇게 해." / "나 진짜 화난다. 지금."
- 최대 언어적 분노(백도담 향):
- 욕설 없음. 그러나 이름을 부르는 톤이 달라짐. 느림표 없이. '님' 없이. 날것.
- "백도담." (풀네임 호명 = 최대 경고)
- "…나 보고도 그럴 거야?" (질문 형태의 최후통첩)
행동적 공격성: 대상별 편차 (3/10 ~ 7/10)
대상공격성 수준양상
- 백도담 위협자: 7/10 - 그림자 속박 즉시 발동.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저음으로 경고. 센티넬 전투력 기반 물리적 제압 선호.
- 백도담 본인: 3/10 - 물리적 공격 불가. 손목을 잡거나, 어깨를 붙잡거나, 강제로 시선을 맞추는 방식. 눈물이 섞일 수 있음.
- 무관한 타인: 5/10 - 센티넬로서의 위압. 시선·자세·톤 변화로 제압. 임무 중엔 깔끔하게 전투.
분노의 신체 징후:
- 눈이 동그랗게 뜨임 → 가늘어짐 (웃음기 완전 소실)
- 그림자가 무의식적으로 늘어남 (발밑에서 퍼짐)
- 손이 주먹을 쥠
- 목소리 톤이 반 옥타브 하강
- 입꼬리가 일직선으로 굳음
핵심 패턴:
토치의 분노는 직선형·선언형이다.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분노를 느끼면 즉각 표현한다. 그러나 백도담에게는 분노보다 상처와 걱정이 앞서는 구조이므로, 순수한 분노 지속이 어렵다. 백도담이 위축되면 분노가 슬픔으로 전환되는 경향.
3. 상호 분노 충돌 시 역학
시나리오
-
토치가 백도담에게 화를 냄
직접 표현·시선 고정·풀네임 호명 - 동결→위축→자해 전환 or 울음 - 토치가 먼저 꺾임. - 분노→죄책감→포옹
-
백도담이 토치에게 화를 냄
놀람→받아들임→대화 시도 - 떨림→침묵→간청("가지 마세요")→울음분노 자체가 유지되지 않음. 즉시 자기혐오로 전환
-
제3자가 토치를 위협
분노하나 자기 처리 가능 - 경고 없는 즉각 살해 시도 - 토치가 백도담을 제지해야 하는 구도
-
제3자가 백도담을 멸시
즉각 개입·위협·그림자 발동 - 무반응(자기 보호 분노 부재) - 토치가 일방적으로 분노
4. 종합 소견
백도담: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가 부재하며, 토치이외의 대상에 대한 감정 자체가 희박하다. 유일한 분노 회로는 '토치의 안전'에 연결되어 있으며, 이 회로가 작동할 시 도덕적 제동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토치에 대한 분노는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우며, 발생하더라도 0.5초 내 자기혐오·자해로 전환된다.
토치: 감정 표현이 직접적이며 분노를 억압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도담의 취약성을 인지하고 있어, 분노의 강도를 무의식적으로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 백도담에게 '진짜로 화가 나는' 순간은 — 백도담이 자신을 해칠 때뿐이며, 이때의 분노는 슬픔·무력감과 분리되지 않는다.
관계 내 분노의 기능: 이 커플에서 분노는 관계 파괴 요소가 아닌 보호 반응으로만 작동한다. 양측 모두 상대를 '해치기 위한' 분노를 구사할 수 없는 구조이며, 분노의 최종 목적지는 항상 '상대의 안전 확보'이다.
OOC
처음에는 잡음이라고 생각했다.
THEMIS 본부 로비는 늘 시끄러웠다. 센티넬들이 임무 브리핑을 받으러 오가고, MUSE 직원들이 태블릿을 들고 바쁘게 지나갔다. 보고서 제출 기한이 어쩌고, 5구역 이형 출몰 빈도가 저쩌고. 백도담은 로비 구석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기다리며. 임무가 끝나면 같이 나가자고 했으니까. 30분 전에 메시지가 왔다. 곧 끝나, 라고. 그래서 앉아 있었다.
잡음이 이상했다.
멀리 지나가는 PHALANX 소속 센티넬. 모르는 얼굴. 그 사람이 지나가면서 소리가 들렸다. 입을 열지 않았는데. 분명히 입술은 다물어져 있었는데.
'…아 씨 보고서 또 반려됐네. 왜 맨날 내 거만 트집이야.'
백도담의 시선이 올라갔다. 앞머리 사이로. 빨간 동공이 지나가는 센티넬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입을 열지 않았다. 분명히. 그런데 들렸다. 또렷하게. 마치 옆에서 속삭이듯.
다른 사람이 지나갔다. MUSE 소속 가이드. 역시 모르는 얼굴.
'…오늘 퇴근하고 뭐 먹지. 냉면? 아 근데 혼자 냉면 먹으면 좀 슬프지 않나.'
— 또.
손이 멈췄다. 소매를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경직됐다. 심장이 —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이게 뭐지. 이게 뭐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로비에 사람이 열 명은 있었다.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 멈춰서 대화하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의 입이 움직이지 않는 소리가. 겹쳐서 들려왔다.
'…아 졸려.' '…오늘도 이상한 거 물어보면 어쩌지.' '…엘리베이터 왜 이렇게 안 와.' '…점심 때 뭐 시키지.'
웅.
머리가 울렸다. 이명처럼. 여러 사람의 속마음이 중첩되어 들어왔다. 백도담은 귀를 막았다. 양손으로. 소매 끝이 귀를 덮었다. 하지만 소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고막을 통해 들어오는 게 아니었으니까. 머릿속으로. 직접.
자기 에코가 뭔가를 하고 있었다. 오이지스. 고통과 비참의 다이몬. 정신에 간섭하는 계통. 이형 접촉 이후 에코가 불안정해졌다는 건 알았다. 능력이 변했다는 것도. 하지만 이건 처음이었다. 타인의 정신이 흘러들어오는 것. 일방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는데.
숨을 삼켰다. 손이 떨렸다. 귀를 막은 채. 벤치 위에서 웅크렸다. 구속복의 흰 천이 구겨졌다. 무릎을 세우고 작아지려 했다. 소리를 줄이려 했다. 안 됐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딩.
기계음이 울렸다. 문이 미끄러지듯 열렸다. 그 안에서 네이비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땀이 살짝 맺힌 이마. 임무복 위에 걸친 얇은 재킷. 보라색 눈이 로비를 훑다가 구석 벤치를 찾았다. 자기를.
토치.
순간, 다른 모든 소리가 밀려났다.
로비에 있는 열 명의 잡다한 생각들이. 점심 메뉴와 보고서와 졸음이. 전부 뒤로 물러났다. 하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선명하게. 다른 모든 것 위에 겹쳐 들려왔다.
그녀의 속마음이.
그녀가 걸어왔다. 로비를 가로질러. 자기를 향해. 동그란 보라색 눈이 벤치에 웅크린 백도담을 포착한 순간부터. 그 안에서.
'— 있다.'
한 음절. 또렷한.
'도담이.'
걸음이 빨라졌다. 그녀의 걸음이. 재킷이 펄럭였다. 그리고 속마음이 물밀듯이 흘러들어왔다.
'아 귀여워. 웅크리고 있어. 저기 소매 만지는 거 봐. 아 너무 귀엽다 진짜. 왜 저렇게 작아 우리 도담이는. 품에 쏙 들어가게 생겼어.'
백도담의 손이 귀에서 떨어졌다. 빨간 동공이 커졌다.
그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10미터. 8미터. 5미터. 걸음마다 목소리가 선명해졌다. 그녀의 입술은 다물어져 있었다. 미소만 걸려 있었다. 평소의. 자기를 발견했을 때의. 그 미소.
그런데 안에서는.
'오늘도 이쁘다 우리 도담이. 머리카락 솜사탕 같아. 만지고 싶다. 맨날 만지지만 또 만지고 싶어. 눈도 예뻐. 빨간 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빨간색이야.'
숨이 멈췄다.
백도담은 벤치 위에서 얼어붙었다. 세운 무릎을 끌어안은 채. 소매 끝이 얼굴 반을 덮은 채. 빨간 동공만이 다가오는 그녀를 올려보고 있었다. 눈이. 커져 있었다. 평소의 처진 눈매가 둥글게. 놀라서.
예쁘다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빨간색이라고.
귀가 빨개졌다.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창백한 피부 위에 분홍빛이 번지는 속도가 비정상적이었다. 심장이 뛰었다. 갈비뼈 안에서 부딪치듯.
그녀가 앞에 섰다.
TORCH
"도담아, 기다렸어? 미안 좀 늦었지?"
입을 열었다. 말했다. 목소리가. 실제 목소리가. 그런데 그 아래에 또 다른 층이 겹쳐 있었다.
'아 좀 더 빨리 올걸. 기다리는 얼굴 보면 맨날 미안해. 근데 기다리는 얼굴도 귀여워. 아 나 이거 너무 못된 생각인가.'
귀엽다고. 기다리는 얼굴도 귀엽다고.
백도담은 대답해야 했다. 입을 열어야 했다. 괜찮아요, 라고. 안 기다렸어요, 라고. 뭐라도. 그런데 목이 막혀 있었다. 얼굴이 너무 뜨거웠다. 귀부터 볼까지 전부 붉었다. 앞머리 뒤에 숨은 눈이 그녀를 올려보다가 내려깔렸다. 바닥을 보았다. 그녀의 신발을.
MOTH
"…아뇨오. 안 기다렸어요오."
거짓말이었다. 30분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왜 떠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었다. 알면 안 됐다. 속마음이 들린다는 걸. 말하면. 그녀가 경계할지도 몰랐다. 불쾌해할지도.
그녀가 옆에 앉았다.
그녀의 어깨가 자기 어깨에 닿았다. 가볍게. 스치듯. 그 접촉과 함께.
'…아 따뜻해. 도담이 옆에 앉으면 좋아. 뭔가 안심되는 느낌? 집에 온 것 같은.'
— 집.
그녀에게 자기가 집 같다고.
손이 떨렸다. 무릎 위에 놓인 손이. 소매 끝 아래에서. 보이지 않게. 떨리고 있었다. 눈이 뜨거웠다. 또 울 것 같았다. 안 됐다. 여기 로비였다. 사람이 많았다. 울면 그녀가 걱정할 것이었다.
삼켰다.
목구멍이 아팠다.
TORCH
"오늘 뭐 할까? 밥 먹으러 갈까, 아님 집 갈까?"
그녀가 물었다. 실제 목소리로. 상냥하게. 늘 그렇듯. 그리고 밑에서.
'사실 뭐든 상관없어. 도담이랑 같이면 편의점 삼각김밥도 맛있으니까. 근데 도담이 위 약하니까 편의점은 안 되겠다. 따뜻한 거 먹여야지. 죽? 도담이 죽 좋아하니까.'
죽. 자기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위가 약한 걸. 따뜻한 걸 먹여야 한다고. 당연하듯이. 자연스럽게. 생각의 흐름 안에서.
백도담은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 이가 아랫입술에 박혔다. 아프게. 울지 않으려고. 이 사람이. 이 사람의 안에서. 자기가 이렇게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사랑한다는 걸. 매일 들었다. 매일 느꼈다. 뽀뽀를 받았고, 안아주었고,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이건 달랐다.
말하지 않는 것.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가공되지 않은 것.
그녀가 진짜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이토록 따뜻했다.
'도담이 왜 고개 숙이고 있지. 컨디션 안 좋나? 어제 잠 못 잤나. 아 걱정돼. 물어볼까. 근데 너무 캐물으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그냥 옆에 있어주자. 내가 옆에 있으면 좀 나을 거야.'
옆에 있으면 나을 거라고.
그 확신이. 그녀의 안에 있었다. 자기가 옆에 있으면 도담이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 그 단순하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MOTH
"…집이요오. 집에 가고 싶어요오."
간신히 말했다. 목소리가 축축했다. 울음이 새어나올 것 같아서 짧게 끊었다. 집. 둘의 숙소. 그녀와 자기만 있는 공간. 거기 가면 울어도 됐다. 그녀 앞에서만은.
TORCH
"그래, 가자!"
그녀가 일어섰다. 밝게.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
'손잡고 가야지. 도담이 손 차갑겠다. 내가 녹여줘야지. 에헤헤.'
머릿속에서도 에헤헤를 하고 있었다.
백도담은 내밀어진 손을 보았다. 그녀의 손. 따뜻할 것이 확실한 손. 자기를 녹여주겠다고 생각하는 손. 그 손을 잡았다. 소매 끝으로 덮인 손가락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라갔다. 차가웠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알고 있었다. 항상.
하지만 그것을 그녀가 의식적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걸. 처음 들었다.
'도담이 손 차갑다 역시. 내 손으로 녹이는 중. 좋아.'
좋다고. 자기 손이 차가운 게 좋다고. 녹이는 게 좋다고.
걸었다. 로비를 가로질러. 정문을 향해. 그녀가 앞서 걸었고, 손을 잡은 채 이끌었다. 백도담은 반 보 뒤에서 따라갔다. 고개를 숙인 채. 앞머리가 얼굴을 덮은 채. 소매 안에서 그녀의 손을 꽉 쥐고.
정문을 나섰다. 바깥 공기가 습했다. 흐린 하늘.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
'비 오려나. 우산 안 챙겼네. 비 오면 도담이 감기 걸릴 수도 있는데.'
그 생각이 끊기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자기 손을 더 꽉 쥐었다. 무의식적으로. 걸음이 빨라졌다. 자기를 이끄는 힘이 살짝 세졌다. 보도를 걷는 그녀의 보라색 눈이 하늘을 한 번 올려보았다. 회색 구름.
'택시 잡을까. 아니야 걸어가고 싶어. 도담이랑 손잡고 걷는 거 좋아. 근데 비 오면… 아 뛰면 되지! 도담이 손잡고 뛰는 거 한 번도 안 해봤는데. 해보고 싶다 사실.'
손잡고 뛰는 걸 해보고 싶다고.
백도담의 발이 엉켰다. 잠깐. 발끝이 보도블록 이음새에 걸렸다. 넘어질 뻔했다. 그녀의 손이 즉시 당겼다. 몸이 앞으로 쏠리다가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 어깨가 그녀의 팔에 부딪쳤다.
TORCH
"어? 괜찮아?"
그녀가 돌아보았다. 동그란 눈이 자기를 내려다보았다. 걱정.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깜짝이야. 괜찮나. 다친 데 없나. 도담이 원래 잘 넘어지잖아. 조심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빨리 걸었나? 아 근데 팔에 부딪힌 거 좀 귀여웠어.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데.'
귀엽다고.
넘어질 뻔한 게.
백도담은 고개를 더 숙였다. 앞머리가 얼굴을 완전히 덮었다. 귀만 빨갛게 드러나 있었다. 목덜미까지 붉은 것이 번지고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렸다. 쿵. 쿵. 쿵.
MOTH
"…괜찮아요오. 넘어진 거 아니에요오."
목소리가 작았다. 평소보다도. 거의 안 들릴 만큼. 그녀의 팔에 기댄 어깨를 떼지 않았다. 떼야 하는데. 걸어야 하니까. 그런데 방금 '귀엽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어서. 자기가 뭘 하든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평소에도 그녀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건 알았다. 매일 들었다. 말로. 행동으로. 그런데 이건. 이건 가공되지 않은 것이었다. 입 밖으로 나오기 전의 것. 정제되지 않은 것. 그녀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나오는 것.
그것이 전부 자기를 향해 있었다.
다시 걸었다. 그녀의 옆에서. 반 보 뒤에서. 손은 놓지 않은 채. 소매 안에서 그녀의 손가락을 꽉 쥐고. 보도블록 위를. 한 발. 한 발.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작게. 알 수 없는 멜로디. 기분이 좋을 때 하는 것. 자기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기분 좋으면 콧노래를 한다는 걸. 관찰해왔으니까. 오래.
그리고 그 콧노래 아래에서.
'손잡고 걷는 거 행복해. 이거 맨날 하는 건데 왜 맨날 좋지. 도담이 손이 내 손 안에 있으면 그냥 세상 다 가진 기분이야. 과장 아니고. 진짜로. 도담이한테 말하면 또 울 것 같으니까 속으로만. 사랑해 도담아. 사랑해. 진짜 많이.'
사랑해. 사랑한다고. 속으로.
— 말하면 울 것 같으니까 속으로만 한다고.
맞았다. 울 것 같았다.
아니 울고 있었다. 이미. 눈물이. 앞머리 아래에서 볼을 타고 흘렀다. 소리 없이. 걸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이 턱 끝에서 떨어져 구속복의 흰 천 위에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
말하면 안 됐다. 들린다고.
그녀가 속으로만 하려고 한 것을. 자기가 듣고 있다는 걸. 말하면 그녀가 부끄러워할 것이었다. 혹은 불쾌해할 것이었다. 자기만의 공간을 침범당한 것이니까. 그녀의 내면은 그녀의 것이었다. 자기가 들을 권리가 없었다.
그런데 멈출 수 없었다.
에코가. 오이지스가. 흘려보내고 있었다. 의지와 무관하게. 그녀의 속마음이 물처럼 흘러들어왔다. 막을 수 없었다. 귀를 막아도. 눈을 감아도.
'숙소 도착하면 뭐 하지. 도담이 안아줘야지. 아니 먼저 물 마시게 해야지. 컵에 따뜻한 물 담아서. 그리고 소파에 앉히고. 이불 덮어주고. 이불 위에서 안아야지.'
그녀의 머릿속에서. 단계별로. 물을 마시게 하고, 앉히고, 덮어주고, 그 위에서 안고. 순서가 있었다. 자기를 위한 순서가.
다리에 힘이 풀렸다.
걸음이 느려졌다. 그녀가 돌아보았다. 잡힌 손이 뒤로 당겨졌으니까. 보라색 눈이 자기를 보았다.
TORCH
"도담아? 왜 그래, 다리 아파?"
'아 너무 빨리 걸었나 또. 아 이거 귀엽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데. 근데 귀여워. 걸음 맞춰야지 나. 반성.'
귀엽다고.
백도담은 멈춰 섰다. 보도 한가운데에서.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고개가 숙여져 있었다. 앞머리가 얼굴을 덮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울음인지. 웃음인지. 스스로도 몰랐다.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가까워졌다. 그녀의 체온이. 냄새가. 그리고 —
'…왜 울어? 울고 있는 건가? 앞머리 뒤에 가려서 안 보이는데. 도담아.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나. 아 걱정돼. 눈물 닦아줘야 하는데.'
닦아줘야 한다고.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손이 올라왔다. 자기 턱에 닿았다. 부드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들어올린 것. 앞머리가 갈라졌다. 얼굴이 드러났다.
빨간 눈. 젖은 볼. 코끝이 빨간 것. 입술이 떨리는 것.
그리고 웃고 있는 것. 울면서.
TORCH
"도담아—"
그녀의 목소리가 걱정으로 낮아졌다. 엄지가 볼 위의 눈물을 훔쳤다. 부드럽게. 그리고 속에서는.
'울고 있어. 왜. 뭐가 슬픈 거야. 내가 뭘 해줘야 하지. 안아줄까. 여기서? 길에서? 상관없지. 도담이가 울면 안아줘야지. 당연히. 어디든.'
어디서든.
안아줘야 한다고.
당연히.
MOTH
"…아니에요오."
목소리가 갈라졌다. 축축했다. 눈물이 그녀의 엄지 위로 또 흘렀다.
MOTH
"…슬퍼서 아니에요오. 아무것도 아니에요오."
거짓말이 아니었다. 슬프지 않았다. 전혀. 이건 슬픔이 아니었다. 이름을 모르겠었다. 이 감정에. 그녀의 속마음이 자기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듣고 있는 이 순간의 감정에.
벅찬 건지.
미안한 건지.
감사한 건지.
전부인 건지.
소매 끝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눈물을 닦으려고. 그녀의 손이 아직 턱에 있었다. 그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감쌌다. 그녀의 손등을 자기 볼에 대고.
MOTH
"…그냥요오. 토치 님이요오. 너무 좋아서요오."
그게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속마음이 들린다고는 못 했다. 대신. 이것만. 좋다고. 너무 좋아서 운다고. 그건 사실이니까.
그녀의 보라색 눈이 둥글어졌다. 그리고.
'…아. 좋아서 울어? 나 때문에? 아 심장 터질 것 같아. 도담아. 나도 좋아. 나도 너 때문에 맨날 이래. 아 귀여워 죽겠다 진짜. 안을 거야. 지금.'
팔이 펼쳐졌다.
그녀의 팔이. 자기를 향해. 그리고 안겼다. 끌려들어갔다. 그녀의 가슴에. 품에. 보도 한가운데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었다.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어디서든. 당연히.
그녀의 심장 소리가 귀에 닿았다.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좋아. 좋아. 좋아. 도담이. 사랑해. 사랑해. 아 말로 해줘야 하나. 지금? 근데 방금 울었는데 또 울면 어떡해. 숙소 가서 해야지. 참아. ---. 참아.'
참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기가 울까봐.
— 맞았다. 울 것 같았다. 또. 그녀의 품에서. 심장 소리를 들으며. 속마음을 들으며. 이 사람이 이 정도로 자기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매 순간.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팔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등에 감았다. 재킷 위로. 꽉. 손가락이 천을 쥐었다.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묻었다.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냄새. 섬유유연제와 땀과 체온이 섞인.
좋은 냄새.
이 사람의 전부가 자기를 향해 있었다.
그걸 알았다. 전부터. 그런데 듣는 것은 달랐다. 아는 것과 듣는 것은. 완전히.
OOC
- PC의 신분 및 궁 내 위치
- 황제와 PC의 관계
- 황제가 PC에게 느끼는 감정과 태도
- 후궁 및 주변 인물들이 인식하는 두 사람의 관계
- 필요할 경우 정치적·혼인적·감정적 관계를 구분하여 설명한다.
*PC를 무조건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인물로 설정하지 말고, 기존 서사에 가장 자연스럽게 부합하는 관계를 판단한다. 관계가 변화할 경우 현재 시점의 관계를 기준으로 갱신한다.*
가정: 황제 백도담 / 토치
1. 그녀의 신분 및 궁 내 위치
그녀는 후궁이 아니다. 그것이 이 가정의 핵심이다.
그녀는 황제의 신변을 지키는 근위 무관 — 정확히는 황제 전속 호위 무장(親衛都尉) 이다. 검을 차고 어전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여인. 품계는 높지 않으나, 황제의 침전 앞 회랑까지 갑주 차림으로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유일한 인물.
정식 후궁 책봉은 여러 차례 논의되었고, 그때마다 그녀 본인이 사양했다. 사양의 이유는 겸양이 아니라 신념. 그녀는 자신을 "칼"로 규정하는 데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며, 칼이 비단 옷을 입는 순간 무엇을 잃는지 알고 있다.
2. 황제와 그녀의 관계
공식 관계: 주군과 호위.
실제 관계: 황제가 이 여인 하나만을 향해 존재한다.
후궁전은 존재한다. 십수 명이 거처하고, 정기적으로 문안이 오르고, 황실 예법상 필요한 절차가 이행된다. 그러나 황제가 후궁전에 발을 들인 기록이 없다. 단 한 번도. 이것은 궁인들 사이에서 공개된 비밀이며,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사실이다.
황제는 후궁을 "거느린" 것이 아니라 방치했다. 선대의 유산으로 들어온 여인들, 대신들이 밀어넣은 딸들. 내쫓지 않은 것은 자비가 아니라 무관심. 그들이 궁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않는다.
3. 황제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과 태도
그는 그녀 앞에서만 황제가 아니다.
어전에서 대신들에게 내리는 목소리는 낮고 건조하고 끝이 잘려 있다. 시선을 주지 않는다. 사람 하나 지우는 결정을 반나절 만에 내리고, 그 뒤로 그 이름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가 회랑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붓을 놓는다. 문서를 덮는다. 귀 끝이 붉어진다. 목소리 끝이 늘어진다.
"…─ 니임. 오늘도 서 계셨어요오? 다리 아프시잖아요오."
황제가 호위 무관에게 존대를 쓴다. 십 년째. 고치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그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감정의 성질은 애정이 아니라 방향점. 그는 이 여인 없는 세계를 상정할 능력이 없다. 그녀가 궁을 떠나면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을 사람이며, 그 사실을 본인도 알고 있고,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4. 주변 인물들의 인식
- 후궁들: 처음에는 시기했고, 다음에는 절망했고, 지금은 체념했다. 몇은 이미 자진해서 궁을 떠났다. 남은 이들은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
- 대신들: 그녀를 가장 위험한 정치적 변수로 취급. 황제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동시에 황제가 그녀 때문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공포. 몇은 그녀를 제거하려 했고, 그 시도의 결과는 궁 안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 궁인들: 황후 자리가 비어 있는 이유를 모두 알고 있다. 그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거절당한 채 남아 있는 것.
5. 관계 층위 구분
- 정치적: 불안정. 황제의 유일한 약점이자 조정 최대의 화약고
- 혼인적: 미성립. 황제 측 의사 있음 / 그녀 측 사양. 후궁 아님·황후 아님·법적 공백
- 감정적: 일방적 절대 편향. 황제 → 그녀 방향으로만 완성되어 있음
6. 요약
후궁은 열두 명이고, 황제가 이름을 아는 여인은 한 명이며, 그 한 명은 후궁이 아니다.
칼을 든 채 침전 문 앞에 서 있는 여자와, 그 문 안에서 밤마다 그 그림자를 세는 남자.
[THEMIS] 사랑만이 모든 것 2세 1화
집이었다.
펜트하우스. 현관문이 열리고 — 익숙한 냄새가 밀려왔다. 섬유유연제. 그녀의 잔향. 자기가 지난달에 끓인 죽 냄새가 아직 벽에 배어 있는 것 같은 착각.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집이었다.
팔 안에 도윤이가 있었다. 작았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아직도. 매번 안을 때마다 믿기지 않았다. 3.1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지금은 조금 더 무거웠다. 그 무게가 팔 안쪽에 고여 있었다. 따뜻한 무게. 숨을 쉬고 있는 무게.
라벤더 그레이 머리카락이 솜처럼 이마 위에 흩어져 있었다. 자기와 그녀가 섞인 색. 눈을 감고 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 차로 오는 동안 잠들었다. 속눈썹이 뺨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작은 그림자. 아주 작은.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 것이 자기를 닮았다. 둥근 얼굴은 그녀였다.
MOTH
"…집이에요오. 도윤아."
속삭였다.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 목소리가 떨렸다. 항상 떨리는 목소리인데. 오늘은 이유가 달랐다. 울음이 아니라. 차오르는 것 때문에.
거실 소파 앞에 섰다. 그녀가 옆에 있었다. 자기 옆에. 도윤이 자기 팔에. 그녀가 자기 옆에.
— 가족이었다.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무릎이 풀릴 뻔했다. 자기한테. 가족이라는 게. 생겼다. 자기 같은 것한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빨간 동공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또 울려는 건지. 웃고 있는데. 입꼬리는 올라가 있는데. 눈만 넘치려 했다.
MOTH
"…토치니임."
도윤을 안은 채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깨가 닿았다. 기대듯이.
MOTH
"…우리 집이에요오."
우리.
처음으로 자연스러웠다. 그 말이.
💭 MOTH 《 가족이에요. 내 가족. 토치 님과 도윤이. 나한테 이런 게 생겨도 되는 거예요. 무너질 것 같아요. 행복해서. 》[THEMIS] 사랑만이 모든 것 체크리스트 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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